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낯선 공기의 향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그때 비로소 ‘아, 내가 진짜 떠나왔구나’ 싶죠.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는 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가까워서 빨리 다녀올 수 있는 곳?” “조금 멀어도 볼 게 많고 분위기 좋은 데?”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내가 다녀온 여행들을 떠올리며, ‘거리’와 ‘볼거리’ 사이의 고민 속에서 어떤 선택이 좋았는지, 어떤 느낌이 남았는지를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짧은 거리, 가까운 나라에서의 잔잔한 시간
서울에서 후쿠오카까지는 비행기로 딱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비행 중 간단한 음료 하나 마실 시간쯤에 도착했죠.
후쿠오카의 골목은 참 조용했어요. 커피 한 잔 들고 혼자 천천히 걸었던 텐진의 아침, 편의점 옆 벤치에 앉아 오뎅 국물 한 입 떠먹었던 저녁… ‘여기선 누구도 나를 모른다’는 익숙하지 않은 자유가 참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비행이 짧다 보니 몸이 지치지 않았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걷고, 먹고, 느낄 수 있었던 것도 큰 장점이었어요. 도쿄처럼 복잡하지 않고, 교토처럼 전통적이지도 않은 이 도시는, 어쩌면 내가 가장 가볍게 다녀온 여행지였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짧은 거리’라는 건 한계도 있었어요. 3박 4일을 다 보내기엔 콘텐츠가 부족해서, 마지막 날은 그냥 아무 목적 없이 호텔 근처를 맴돌았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그런 ‘의미 없는 하루’도 여행의 일부일지도 모르죠.
볼거리에 압도되는 동남아의 생생한 하루
반대로 방콕에 갔을 땐, 비행기에서부터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5시간 조금 넘는 비행, 뒤척이다 잠든 끝에 도착한 수완나품 공항. 덥고 끈적한 공기, 정신없는 공항 안 인파에 잠시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죠.
하지만 시내에 들어가고, 첫 끼로 먹은 똠얌꿍의 얼얼한 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어요. 카오산 로드의 네온사인, 짜오프라야강의 야경, 왓아룬의 금빛 사원… 하루가 짧다고 느껴질 만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방콕 근교 수상시장에선 바나나 팬케이크 하나를 사먹으면서 “내가 지금 진짜 태국에 있구나” 실감했고, 마사지숍에선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조금 멀어도 잘 왔다’는 생각은, 그렇게 쌓인 이야기들이 생길 때 문득 찾아오더라고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피곤에 쩔어 잠들었지만, 그만큼 기억은 강렬하게 남았던 여행이었습니다.
결국, 마음이 끌리는 곳이 정답이다
여행을 고를 때마다 ‘거리’를 먼저 보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짧은 일정일 땐 비행시간부터 검색하게 되죠. 하지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낯선 곳으로 가는 용기를 내보는 것도 괜찮다는 걸 여러 번 느꼈어요.
가까운 도시가 주는 여유는 단정하고 조용한 감성입니다. 지금 당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가방 하나 덜렁 메고 갈 수 있는 안정감이 있어요. 반면, 동남아처럼 조금 더 손이 가는 여행은, 준비할 것도 많고 피곤도 따르지만… 그만큼 경험은 진하고 기억은 오래갑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단, “지금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를 먼저 묻습니다. 지금은 조용한 골목길이 필요한지, 아니면 밤마다 살아있는 거리에서 내 마음도 흔들리고 싶은지.
그 답은 늘 여행을 떠나고 싶은 ‘그 순간의 나’가 알려주더라고요.
여행에는 정답이 없어요. 가까운 곳에서의 잔잔한 위로도, 멀리 떠난 곳에서의 강렬한 기억도 다 의미 있으니까요. 이번 봄, 당신은 어떤 여행을 원하나요? 이 글이 당신의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는 작은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