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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비 내리던 날, 그녀는 말없이 돌아섰고 그는 우산도 없이 뒤를 쫓았다.
<사랑의 불시착> 속 그 눈 덮인 스위스의 어느 다리 위.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저곳, 진짜 있을까?"

그리고 몇 년이 흘렀을까.
믿기 힘들게도, 나는 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스위스, 인터라켄 근처.
‘이젤트발트’ 이름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내 마음 어딘가에 꼭 박힌다.
하얀 눈이 조용히 호숫가를 덮고 있었고, 숨소리조차 민망할 만큼 적막했다.
그 순간, 정말로 들린 것 같았다.
"무사히 잘 지내다 와요."
아니, 어쩌면 내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장소는 기억을 담고, 이야기를 품고,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다시 그곳을 찾는다.

영화보다 현실 같은 드라마, 그 배경지들

누군가 내게 영화 촬영지와 드라마 촬영지 중 어디가 더 좋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드라마"라고 말할 것 같다.
영화는 하나의 장면을 위해 잠깐 머물고 떠나는 느낌이라면,
드라마는 오랫동안 그곳을 품고, 생활하고, 감정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촬영지는 그 감정이 오래도록 배어 있다.

서울 성수동의 카페 거리,
<우리들의 블루스>의 제주 오름,
<더 글로리> 속 진해의 거리들.
화면으로만 보던 곳에 직접 발을 닿는 순간 ,
그 장면들이 마치 내 기억인 것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나만의 장소에 추가가 된다.

여행은 정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따라가는 것.
드라마 속 여행지는 그 감정의 밀도가 다르다.

2025년, 기억에 남는 여행 장소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의 촬영지였던 속초의 외곽 장소였다.
한적하고 조용한 골목길, 붉게 물든 단풍 아래 놓인 오래된 벤치,
그 위에 잠시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마치 드라마 속 대사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다음 생에도 너를 찾을게.”

거창한 관광지보다 그런 장소가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사진을 찍는 대신 눈을 감고,
장면을 마음에 저장하게 된다.

내가 그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이 한 장면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찍었을지도 생각났다. 

2025년 올해도 영화나 드라마 속 나온 장면들이 내가 갔을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되고 궁금했다.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가서 현지 음식을 먹으면 그 기억이 내 걸로 더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근처 지역 시장이나 맛집을 검색해서 가는 것도 추천한다.

우연히 찾은 드라마 촬영지들이내 여행의 방향을 바꾸었다.

드라마 vs 영화 촬영지, 결론은?

결국 내 여행은 드라마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영화 촬영지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건축학개론>의 제주 서연의 집에서 느꼈던
그 ‘첫사랑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감정’은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드라마는 길고, 영화는 깊다.
그래서 여행도, 선택도 자유롭다.
어떤 이는 장면을 따라,
어떤 이는 대사를 따라 떠난다.

나는 주인공들이 사랑했던 그 장소에 가보고 싶었을 뿐이다.
다시 그 장면을 살아보기 위해서.

화면 속에서 흘렀던 장면들이,
내 걸음으로 다시 채워질 때
그건 여행이 아니라, 하나의 ‘체험’이 된다.
드라마든 영화든,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곳은 당신의 여행지다.
2025년, 당신만의 좋아하는 영화 혹은 드라마의 명장면을 따라 아무생각 없이 가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만들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진정한 여행은 다니면 다닐수록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맞는 여행을 가는 그날까지 모두 열심히 살다가 떠나보시길 바란다. 

 

화면 속 여행 장소
화면 속 여행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