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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카페에 처음 갔던 날은 유난히도 흐렸던 평일 오후였다. 서울 익선동, 비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헤매다가 무심코 문 하나를 열었는데, 안쪽엔 조용한 마루와 따뜻한 조명 아래 다관이 놓여 있었다.
“여기… 진짜 조선시대 같아.” 같이 간 친구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상하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이었다. 일을 하면서 바쁜 시기가 생길 때 여행을 가고 싶어도 시간이 너무 부담되는데 그때 친구와 함께 갔던 한옥 카페의 여운이 남아 요즘도 여행을 가고 싶을 땐 근교에 한옥 카페를 검색해서 찾아보고 방문해본다.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 뿐만 아니라 그 카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해볼 수 있는 체험 등이 있다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가보고 싶은 것 같다.

그 공간은 무언가 시간의 결이 다른 곳 같았다. 다도 체험을 하면서 찻잔을 닦고,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던 친구의 손끝을 보며 나도 따라해봤다. 우리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찻잔에 집중했다. 오래된 시간 속에 조용히 침잠해가는 듯한 그 경험은, 어느 북적한 카페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던 감정이었다. 내 내면의 불필요한 것들은 비우고 차분한 감정으로 따뜻함을 채워 넣는 듯한 느낌이 내 몸이 충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처음엔 거기 가기 싫었다. 바쁜 일이 많았고, 그냥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시원한 아이스라떼나 마시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친구가 “이럴 때 색다르게 익선동 한옥카페 가보자” 했고, 그냥 끌려가듯 따라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강제성이 있었기에 오히려 내가 뭘 놓치고 있었는지 알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며칠 뒤엔 경기도 파주로 향했다. 같이 간 사람은 동생이었다. 평소엔 잘 안 움직이던 녀석이 한지 공예 체험이 있다는 말에 꽤 적극적으로 따라나섰다. 산 속, 구불구불한 오르막길 끝에 닿은 그곳은 조용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진짜 공예 체험 같은 거야?" 동생이 물었고, 우리는 연꽃 조명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종이 붙이는 게 너무 어려웠지만, 어느새 각자 자신만의 조명을 완성하고는, 서로의 것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엄마 줘야지." 그 말에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릴 적 부모님과 다녔던 체험들도 떠오르고 도심을 떠난 시간이 주는 정적이 그렇게 사람을 부드럽게 만들 줄은 몰랐다.

그리고 전라도. 담양. 그곳에선 그냥... 다 설명이 필요 없었다. 전통 기와와 넓은 대청마루, 그리고 대숲 너머로 부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으니까. 시간이 있다면 가보는 걸 추천한다. 같이 간 엄마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다식 만들기 체험에서 찹쌀가루를 손에 묻히며 조심스럽게 모양을 빚던 엄마의 표정은 너무도 따뜻했다. 나에겐 늘 어른이자 큰 울타리 같던 엄마가 이런 체험을 통해 엄마의 어릴적 모습을 조금은 본 듯한 느낌이여서 마음이 나도 따뜻해졌다.
"이런 건 처음 해보네. 어릴 땐 그냥 사서 먹었지..." 그 한 마디가, 그날의 풍경을 다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여도 이렇게 많이 다녀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한옥카페를 좋아하게 된 데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 익숙한 듯 낯선 감정들, 전통과 현재가 교차하는 그 어색함, 체험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한 몰입. 이 모든 게 한데 뒤섞여 나를 끌어당긴다. 치열하게 사회에서 평일에 일하는 나에게 내가 선물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정화의 시간 같았다. 현대인들은 본인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 없다고 하는데 이런 방법도 하나의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멀리 안가도 되고,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찾아서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가보면 되니 한 번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

서울은 언제나 분주하다. 그래서 그 틈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한옥카페는 작은 피난처가 된다. 경기도는 자연이 많다. 그래서 감각이 살아난다. 전라도는 느리다. 그래서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한옥카페가 모두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예약은 필수고, 특히 체험이 있는 곳은 빨리 마감되곤 한다. 주차도 문제다. 익선동에선 한참을 걸었다. 담양에선 입구를 못 찾아 다시 유턴하기도 했다. 게다가 다과가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 친구는 말차가 너무 쓰다며 거의 안 마셨다. 하지만 나는 그 쓴 맛마저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날의 공기와 어울렸달까.

글을 이렇게 쓰고 나니, 정말 다양한 시간들을 한꺼번에 꺼낸 느낌이다.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 하지만 그게 바로, 한옥카페에서 얻은 기억이다. 조용하고 어지러운, 평온하지만 감정이 요동치는 시간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고 있어서, 이런 비일상의 조각이 더욱 빛나는 게 아닐까. 가끔은 이런 시간을 통해 나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힘내자고 말해준다면 그것만큼 보람차고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자신에게 한 번은 꼭 말해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종종, 그런 조각을 찾아 마루 위에 앉아 있을 것이다. 혼자일 수도, 누군가와 함께일 수도. 어쩌면 당신과도, 언젠가.

 

한옥 카페
한옥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