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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를 여러 번 다녀왔지만, 통영과 거제를 같은 여행지라고 말하기엔 뭔가 확실히 다르다. 지도 위로는 가까워 보여도, 여행이라는 건 결국 마음이 가닿는 방향이니까. 나는 이 두 도시를 걷고, 바라보고, 먹으며 분명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지난 봄,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통영을 찾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선 미륵산에서 본 다도해는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엄마는 “그냥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그 말이 처음으로 이해됐다. 산을 내려와 동피랑 마을로 향했다. 사람들은 벽화를 따라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담장 너머 피어난 꽃들과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이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통영을 통영답게 만든 건 역시 음식이었다.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냄새들이 있다. 그날 점심엔 충무김밥을 먹었다. 반찬 따로, 김밥 따로 나오는 그 낯선 방식이 오히려 더 정겹고 재밌었다. 저녁엔 생선구이를 먹었다. 고등어와 갈치, 그 바다의 짠 공기를 품은 듯한 구이는 도시에선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한산도 유람선에서 먹었던 멍게비빔밥도 잊을 수 없다. 톡 쏘는 멍게 향이 입안에서 퍼지면, 진짜 이 도시의 바다가 내 몸 안에 들어온 듯했다.

통영은 그렇게 ‘느긋한 가족의 시간’에 어울리는 도시였다. 걸음도 느려지고, 굳이 사진을 남기지 않아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풍경들이 있었다. 유명한 명소가 아니어도 좋았다. 시장 골목에서 아주머니가 건넨 한 마디,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던 그 시간 자체가 통영의 매력이었다. 통영은 나 혼자도 여행을 가보고 가족과도 여행을 가봤지만 누구와 함께하는지에 따라서도 너무 다른 도시이다. 어느 여행지나 그렇겠지만 보통 혼자가는 여행을 경험해보기 전에 많이 망설이지만 해보는 걸 추천한다. 나의 삶을 잠시 로그아웃하고 오로지 자연과 주변 환경에 빠져 나 스스로를 놔주고 마음에 충전을 할 수 있는 재충전이 제대로 되었던 곳이여서 그런지 여운이 정말 길게 갓던 도시중 하나이다. 

 

통영과 거제
통영과 거제

 

 

반면 거제는 조금 더 강렬하고 드라마틱했다. 작년 여름, 남자친구와 함께 찾았던 거제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첫날엔 바람의 언덕.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은 실제로는 더 광활했고, 바람은 정말 미친 듯이 불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찍은 셀카 한 장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둘째 날엔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갔고, 언덕 위 노을 맛집 카페에 앉아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거제에서는 먹는 것도 ‘감정’을 더했다. 거제 대구탕은 속이 확 풀리는 시원함이었다. 여행 중 피곤함도, 무거운 기분도 국물 한 숟갈에 가라앉았다. 특히 바다장어구이는 고소한 기름이 입안 가득 퍼지며, 이 도시가 가진 풍요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커다란 굴구이 한 판을 시켜 맥주와 함께 먹으며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우린 그날을 영원히 기억할 거란 걸 직감했다. 지금도 거주하는 곳 근처에서 대구탕을 잊지 못해 찾아 먹어봤지만 그 맛과 그 때의 감성이 나오지 않아 음식만 봐도 장소가 떠오르는 그런 곳이 거제였다. 

거제는 연인의 기억이 묻어나는 도시다. 경치도 음식도 분위기도 모두 ‘함께’일 때 더 빛나는 그런 곳. 통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도시라면, 거제는 감정을 끌어올리고 고백하게 만든다.

교통도 그 느낌을 결정짓는다. 통영은 대중교통으로도 큰 무리 없이 여행이 가능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 한 번이면 주요 명소 대부분을 갈 수 있고, 동선도 꽤나 효율적이다. 거제는 자차가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드라이브가 주는 감동이 워낙 크기에, 대중교통만으로는 절반의 매력만 볼 수도 있다. 대중교통으로도 여행이 가능하지만 특히 해금강이나 학동 몽돌해변은 그 길 자체가 여행이다. 바다 옆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목적을 이룬 기분이 들었다.

가족과의 느긋한 휴식이 목적이라면 통영이, 연인과의 깊은 기억을 남기고 싶다면 거제가 어울린다. 통영은 오래된 일기장 같고, 거제는 감정이 담긴 러브레터 같다. 그리고 나는, 다음엔 혼자라도 다시 그 바다들을 찾아가고 싶다. 멍게비빔밥 한 그릇에 담긴 짠 내음도, 굴구이의 뜨거운 입김도, 그 모든 맛과 시간이 여전히 거기서 나를 기다릴 것 같으니까.